어둠 속의 가장 강렬한 위장술: 심해 생물이 붉은색을 선택한 광학적 역설과 생체 발광 차폐론
육상 생태계에서 붉은색은 가장 위험하고 도드라지는 색채다. 독개구리의 피부, 경고용 표지판, 맹독을 품은 버섯에 이르기까지 붉은색은 포식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강력한 시각적 도발이자 ‘경계색(Aposematism)’의 대명사다.
그러나 빛 한 점 도달하지 않는 수심 1,000m 아래 심해 중층(Mesopelagic zone)으로 내려가면 이 상식은 완벽하게 전복된다. 잠수정의 조명이 켜지는 순간 드러나는 심해 새우, 해파리, 오징어 등 수많은 유영 생물들의 체색은 마치 피를 머금은 듯 강렬하고 선명한 주홍빛과 진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빛이 없는 세상에서 왜 하필 가장 화려하고 눈에 띄는 붉은색을 고집스럽게 진화시켰을까?
대다수 대중 과학 서적들은 이를 두고 단순히 “바닷속에서는 빨간색 빛이 먼저 흡수되어 검게 보이기 때문”이라는 단편적인 광학 원리로 설명을 끝내버린다. 하지만 해양광학과 동물행동생리학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이 현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심해는 결코 완전한 암흑이 아니며, 생물들의 90% 이상이 스스로 빛을 내는 ‘생물발광(Bioluminescence)’의 지뢰밭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해수 스펙트럼의 광학 감쇄 계수 논문 데이터를 대조하고, 붉은 색소의 진화를 둘러싼 학계의 두 가지 상반된 가설(적극적 광학 차폐론 vs 식이 대사 부산물설)을 분석하며, 자연의 위장술을 대하는 필자 본인의 비판적 고찰을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수심 수천 미터 심해 중층에서 관측된 붉은색 심해 해파리 실물 (출처: MBARI)
1. 물리학의 역설: 빨간색은 왜 심해에서 검은색이 되는가?
우리가 물체의 색을 인식하는 원리는 단순하다. 백색광(태양광) 중 특정 파장의 빛이 물체 표면에서 반사되어 인간의 망막에 도달할 때 그 색을 보게 된다. 빨간 사과가 붉게 보이는 이유는 사과 표면이 단파장(파란색, 초록색)의 빛을 흡수하고 650~700nm 부근의 장파장(붉은빛)만을 선택적으로 반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질이 공기가 아닌 ‘물(해수)’로 바뀌는 순간, 전자기파의 거동은 물 분자의 진동 회전 흡수선에 의해 극적인 제약을 받는다.
- 파장별 투과율의 격차: 해수는 빛의 파장에 따라 흡수 계수(Absorption coefficient)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에너지가 낮고 파장이 긴 적색광(Red light, 600~750nm)은 물 분자의 $O-H$ 결합 신축 진동과 강하게 공명하여 수심 10m 이내에서 90% 이상이 흡수되며, 수심 100m를 넘어서면 단 0.001%도 살아남지 못하고 완전히 소멸한다.
- 청록색 창(Optical Window): 반면 450~490nm 부근의 파란색과 초록색 단파장은 물 분자에 잘 흡수되지 않고 가장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간다. 수심 200~1,000m의 점심해대(Twilight zone)에 도달하는 유일한 희미한 자연광은 순수한 청색광뿐이다.
이 광학적 현실에서 붉은색 몸을 가진 심해 새우(Acanthephyra purpurea)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외부에서 비쳐 들어오는 빛 자체가 오직 파란색뿐이므로, 붉은색 파장만을 반사하도록 설계된 이들의 피부는 반사할 붉은빛을 아예 만나지 못한다.
- 들어오는 청색광을 모조리 흡수해 버린 결과, 이들은 주변 물빛과 완벽히 동화되는 ‘완전한 칠흑의 검은색(True Black)’으로 전환된다.
- 심해에서 붉은색은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가시광선 스펙트럼의 물리학을 이용해 스스로를 무(無)로 만드는 가장 완벽한 ‘광학적 투명 망토’인 셈이다.
2. 쟁점 1: 생물발광 차폐 가설 vs 카로티노이드 식이 축적 부산물설
여기서 보다 본질적인 생물학적 논쟁이 발생한다. 심해 생물들은 과연 이 광학적 은폐를 목표로 붉은 색소를 ‘선택적으로 진화’시킨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생긴 체색의 ‘우연한 부산물’인가?
[학계의 대립되는 두 시선]
- 존슨(Johnsen) 연구팀의 ‘적극적 내부 발광 차폐(Pigment screening) 가설’:듀크 대학교의 존케 존슨(Sönke Johnsen) 교수는 심해 무척추동물의 붉은색이 외부 위장보다 ‘내부 먹이의 발광을 가리는 차폐막’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심해의 중층 생물들은 발광 박테리아나 스스로 푸른빛을 뿜어내는 발광 플랑크톤을 삼킨다. 만약 위장과 체벽이 투명하다면, 삼킨 먹이가 뱃속에서 번쩍이는 순간 몸 전체가 손전등처럼 빛나며 상위 포식자에게 위치가 즉각 노출된다. 따라서 위장과 내장을 짙은 붉은색소(아스타잔틴 등)로 두껍게 둘러싸 먹이의 청색 발광을 내부에서 흡수해 차단한다는 논리다.
- 해양생화학계의 ‘외인성 카로티노이드 축적 부산물설’:반면 대사생화학 연구자들은 지나친 적응주의적 해석을 경계한다. 심해 절지동물과 어류는 스스로 카로티노이드(붉은 색소)를 합성할 수 없다. 표층에서 식물플랑크톤이 합성한 카로티노이드가 먹이사슬을 타고 내려오면서 심해 갑각류의 체내에 축적되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붉은색은 비타민 A 합성 및 항산화 대사의 잔류물이 축적된 지질학적·생리적 ‘필연적 결과’이지, 위장을 위해 의도된 유전적 산물이 아니라는 반론이다.
[필자의 비판적 분석 및 의견]
두 가설의 데이터를 대조해 보았을 때, 나는 존슨 교수의 ‘발광 차폐 적응설’에 훨씬 더 무거운 신뢰를 보낸다.
단순한 대사 찌꺼기의 축적이라면 색소가 체내 전반에 무작위로 분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심해 해파리와 빗해파리, 심해 투명 오징어들의 해부학적 구조를 보면, 체벽은 완벽하게 투명함을 유지하면서 유독 ‘소화관(위장관)’ 부위만 정밀하게 붉은색 또는 짙은 갈색 색소로 캡슐화되어 있다.
자신이 투명하다는 장점을 극대화하면서도, 방금 삼킨 먹이가 체내에서 뿜어내는 470nm의 청색 생물발광이 외부로 누출되는 것만을 핀포인트로 막아내기 위한 정밀한 구조적 설계다. 이는 자연선택의 압력이 단순한 대사 부산물을 넘어 치명적인 발광 노출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강력하게 작용했음을 증명하는 명백한 진화적 증거다.
3. 쟁점 2: 심해의 암살자, 붉은 빛을 비추는 드래곤피시(Malacosteus)의 치트키
심해 생물들이 “붉은색은 심해에서 검은색으로 보인다”는 완벽한 광학적 방어막을 구축하자, 포식자들은 이를 뚫어버리는 기상천외한 ‘광학적 치트키’를 들고나왔다. 바로 심해 드래곤피시 계열의 말라코스테우스(Malacosteus niger)다.
대다수 심해 생물의 눈은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470~490nm의 청록색 파장만을 감지하는 단일 시각 색소(Rhodopsin)만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에게 붉은빛은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말라코스테우스는 이 룰을 깨부쉈다.
- 서치라이트의 진화: 눈 바로 아래에 푸른빛을 내는 일반 발광기 외에, 700nm가 넘는 짙은 적색광(Far-red light)을 뿜어내는 특수 발광 기관을 독립적으로 진화시켰다.
- 야간투시경의 장착: 자신이 뿜은 붉은빛을 보기 위해, 박테리오클로로필 유도체와 변형된 시각 색소를 결합하여 해양 척추동물 중 유일하게 붉은빛을 감지하는 특수 망막 구조를 완성했다.
이로 인해 잔인한 사냥의 방정식이 성립된다. 붉은색 피부를 두르고 “나는 완벽히 검은색으로 위장했다”고 안심하고 있는 심해 새우에게, 말라코스테우스는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붉은 서치라이트를 비춘다. 새우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빛도 느껴지지 않지만, 말라코스테우스의 눈에는 새우의 붉은 몸체가 칠흑 같은 바다 속에서 대낮의 네온사인처럼 찬란하게 빛나며 드러난다.
군대의 최첨단 적외선 야간투시경 전투가 이미 수천만 년 전 수심 1,000m 심해 바닥에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 진화라는 거대한 광학 전쟁의 교훈
심해의 붉은색은 단순한 심미적 우연이 아니다. 빛이 사라진 극한의 공간에서 물 분자의 흡수 스펙트럼과 생체 발광의 화학 반응, 그리고 시각 수용체의 신경생리학이 치열하게 맞부딪히며 빚어낸 ‘가장 정밀하고 냉혹한 광학 전쟁의 산물’이다.
눈먼 어둠 속에서도 자연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악하고 이용한다. 파란색 빛만 통과하는 바다에서 가장 붉은 갑옷을 입고 어둠이 되기를 선택한 피식자들과, 그들이 보지 못하는 붉은 투시경을 만들어 기어코 숨통을 끊어놓는 포식자의 군비경쟁 속에서 우리는 진화가 도달한 경이로운 지적 정밀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학술 참고 문헌
- Johnsen, S. (2001). “Hidden in plain sight: the ecology and physiology of organismal transparency.” Biological Bulletin, 201(3), 301-318.
- Johnsen, S. (2005). “The red and the black: bioluminescence and the color of animals in the deep sea.” Integrative and Comparative Biology, 45(2), 234-246.
- Denton, E. J., et al. (1972). “The ‘red’ lights of the stomiatoid fishes.” Journal of the Marine Biological Association of the United Kingdom, 52(4), 841-848.
- Douglas, R. H., et al. (1998). “A novel red-sensitive chlorophyll-derived pigment in the retina of the deep-sea dragonfish Malacosteus niger.” Nature, 393(6684), 423-424.
- Herring, P. J. (2002). The Biology of the Deep Ocean.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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