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에도 계절이 존재할까? 해저 생태계에 나타나는 계절 변화
심해에도 계절이 존재할까?
심해는 햇빛이 거의 도달하지 않고 수온 변화도 비교적 작기 때문에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는 환경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해양학자들이 수천 미터 아래의 해저를 장기간 관측한 결과, 심해 생태계에도 계절에 따른 변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변화의 핵심은 심해의 기온이 아니라 바다 표면에서 생산된 유기물이 해저까지 얼마나, 언제 도달하는가에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북동태평양과 북동대서양의 장기 관측 연구를 중심으로 심해의 계절성을 살펴봅니다.
심해에도 계절이 존재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육지의 계절은 일조 시간과 기온 변화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반면 수심 수천 미터의 심해에서는 지표면과 같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기온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심해에서 말하는 계절성은 일정한 시기에 반복되는 먹이 공급량, 퇴적물 상태, 생물 활동의 변화를 뜻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심해 자체에서 시작되기보다 표층 해양의 계절적 생산 활동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심해의 계절을 이해하려면 해저뿐 아니라 수면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변화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햇빛이 닿지 않는 해저에 계절 변화가 전달되는 이유
표층에서는 햇빛과 영양염을 이용해 식물플랑크톤이 유기물을 생산합니다. 지역에 따라 봄철이나 여름철에 생산량이 증가하기도 하고, 용승이나 해수 혼합에 따라 생산 시기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때 생산된 유기물 가운데 일부는 플랑크톤 사체, 배설물, 응집 입자 등의 형태로 아래쪽으로 가라앉습니다. 상당량은 내려가는 과정에서 분해되지만 일부는 깊은 바다까지 도달합니다. 표층의 생산량이 계절적으로 달라지면 심해에 도달하는 먹이의 양과 시점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즉 심해 생태계의 계절 변화는 햇빛이 해저에 직접 닿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이용해 만들어진 유기물이 이동하면서 나타나는 간접적인 현상입니다.
마린 스노우는 심해 생태계의 계절성을 어떻게 전달할까?
마린 스노우(marine snow)는 바닷속에서 가라앉는 다양한 유기물 입자를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플랑크톤 잔해와 점액성 물질, 작은 생물의 배설물 등이 서로 뭉쳐 형성될 수 있습니다.
입자의 크기와 밀도, 미생물 분해 정도에 따라 침강 속도는 달라집니다. 따라서 표층에서 유기물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해서 모든 심해 지역에 같은 시점에 먹이가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해류가 입자를 옆으로 이동시키거나 중간 수심에서 입자가 분해되면 해저에 도달하는 양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과정 때문에 심해의 계절성은 지역별로 다른 형태를 보입니다.
수심 4,000m에서 관측된 계절 변화: 북동태평양 Station M
심해의 계절성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연구 지역은 미국 캘리포니아 앞바다의 북동태평양에 위치한 Station M입니다. 이 관측 지점은 수심 약 4,000~4,100m의 심해저 환경을 장기간 조사해 온 곳입니다.
Smith와 동료 연구진은 1989년부터 축적된 자료를 이용해 약 24년 동안 표층의 생산 활동, 해저로 가라앉는 유기탄소, 심해저 생물 군집의 탄소 이용량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2013년 발표된 연구는 표층 환경의 변화가 심해저에 도달하는 먹이 공급량과 생태계 활동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먹이 공급이 항상 일정한 속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많은 유기물이 집중적으로 내려오는 현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연구 근거: Smith et al. (2013),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논문 DOI 확인
2012년 살파류 대량 증식이 심해저에 남긴 변화
2012년 Station M 주변 표층에서는 살파류(salp)가 대량으로 증식했습니다. 살파류는 물속의 미세한 먹이 입자를 걸러 먹는 피낭동물로, 대량 증식 이후 배설물과 사체 등의 유기물이 심해로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2014년 발표된 장기 관측 연구에서는 이 사건 이후 심해저에 살파류 유래 물질이 대량으로 도달했고, 해저 퇴적물의 산소 소비와 일부 대형 저서생물의 개체 밀도에도 변화가 나타났다고 보고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살파류 유래 물질은 관측 기간 중 해저 사진에서 넓은 면적을 덮었으며, 일부 해삼류의 밀도는 먹이 공급 이후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표층에서 발생한 생물학적 사건이 수심 약 4,000m의 해저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매년 같은 시기와 규모로 반복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표층 생물의 대량 증식은 계절성과 더불어 해마다 달라지는 해양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연구 근거: Smith et al. (2014), Limnology and Oceanography. 논문 DOI 확인
심해저 생물은 먹이가 도착하면 곧바로 반응할까?
심해저 생물의 반응 속도는 생물의 종류와 관측 지표에 따라 달라집니다. 미생물이나 퇴적물의 산소 소비는 유기물 공급 변화에 비교적 빠르게 반응할 수 있지만, 대형 생물의 개체 밀도나 군집 구조 변화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퇴적물 속 생물의 활동을 평가할 때 연구자들은 퇴적물 군집 산소 소비량(SCOC, sediment community oxygen consumption)을 활용합니다. 유기물이 공급된 뒤 미생물과 저서생물의 호흡 및 분해 활동이 증가하면 산소 소비량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소 소비량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생물종의 개체 수가 증가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생태계 반응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유기물 공급량, 산소 소비, 영상 관측, 생물 시료를 함께 분석해야 합니다.
계절적 먹이 공급은 얼마나 늦게 심해에 도착할까?
표층에서 만들어진 유기물이 심해까지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크고 밀도가 높은 입자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침강할 수 있지만, 작은 입자는 오랫동안 물속에 머무르거나 이동 중 분해될 수 있습니다.
Station M의 장기 관측 자료를 분석한 2018년 연구에서는 표층의 유기물 수출량, 심해의 입자성 유기탄소 유입, 해저 산소 소비 사이의 변화 시차가 사건에 따라 달랐습니다. 일부 관측 사건에서는 관련 변화 사이에 0~70일의 시차가 보고되었습니다.
이 수치는 모든 유기물이 수심 4,000m까지 70일 이내에 도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연구에서 비교한 관측 지표 사이의 시간차이며, 유기물의 이동과 분해 과정이 복잡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연구 근거: 2018년 Station M 장기 관측 연구. 논문 원문 확인
북동대서양 심해평원에서도 계절 변화가 나타날까?
심해의 계절성은 북동태평양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북동대서양의 포큐파인 심해평원(Porcupine Abyssal Plain)에서도 장기간 해저 사진을 촬영해 유기물 입자의 도착 시기와 해저 생물의 반응을 연구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특정 계절에 식물플랑크톤 유래 유기물 잔해가 해저에 나타나는 현상이 관측되었습니다. 다만 유기물의 도착 시기와 양은 해마다 차이가 있었습니다.
북동태평양과 북동대서양의 연구를 비교하면, 심해의 계절성은 전 세계에 동일한 일정표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지역별 표층 생산성과 해양 순환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심해의 계절성과 장기적인 기후 변화는 어떻게 다를까?
계절 변화와 기후 변화는 시간 규모부터 다릅니다. 계절성은 한 해 안에서 반복되는 변화를 뜻하고, 장기적인 기후 변화는 수년에서 수십 년 이상의 환경 변화를 포함합니다.
표층 수온, 해양 혼합, 영양염 공급, 플랑크톤 생산량이 장기간 변하면 심해에 전달되는 유기물의 양과 특성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몇 달 동안의 관측만으로 심해 생태계의 장기 변화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Station M과 같은 장기 관측 지점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 해에 걸친 자료가 있어야 일반적인 계절 변화와 예외적인 먹이 공급 사건, 장기 추세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해의 계절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
연구자들은 하나의 장비만으로 심해의 계절성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해저로 내려오는 입자를 모으는 침강 입자 포집기(sediment trap)는 유기물의 양과 성분을 조사하는 데 활용됩니다.
시간 간격을 두고 사진을 촬영하는 해저 카메라는 퇴적물 표면에 유기물 잔해가 얼마나 쌓였는지, 대형 저서생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해저 산소 소비 측정 장비는 생물 군집의 유기물 이용과 관련된 활동 변화를 평가하는 데 사용됩니다.
또한 인공위성의 해색 관측 자료를 이용하면 표층의 엽록소 농도와 생산 활동의 변화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표층 자료와 심해 현장 자료를 연결해야 계절적 변화가 전달되는 과정을 더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심해 지역에 뚜렷한 계절이 존재할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표층의 생산량이 계절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지역에서는 심해로 공급되는 유기물도 뚜렷한 변화를 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표층 생산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역에서는 계절성이 약하거나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수심, 해류, 해저 지형, 유기물의 분해 속도도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열수분출공이나 냉용출처럼 화학합성에 기반한 생태계는 일반적인 심해 퇴적물 생태계와 에너지 공급 방식이 다르므로 별도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심해에 계절성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를 모든 해구와 모든 심해 생태계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심해의 계절성 연구가 중요한 이유
심해는 표층에서 생산된 탄소가 이동하고 일부가 분해되거나 해저 퇴적물에 저장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특정 시기에 대량의 유기물이 내려오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심해의 탄소 공급량과 생태계 활동을 부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Station M의 장기 연구는 평균적인 유기물 침강량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규모 공급 사건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심해 생태계뿐 아니라 해양 탄소 순환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심해의 계절을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바닷속에도 봄과 여름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아닙니다. 표층에서 발생한 환경 변화가 수천 미터 아래의 생물과 탄소 순환에 어떻게 전달되는지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심해에도 봄과 겨울이 있나요?
육지처럼 뚜렷한 기온 변화가 나타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일부 심해 지역에서는 표층 생산 활동과 유기물 공급량의 계절적 변화가 해저 생태계에 전달됩니다.
심해 생물은 계절에 따라 먹는 양이 달라지나요?
일부 저서생물은 유기물 공급이 증가한 뒤 섭식 활동이나 분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반응은 생물종과 환경 조건에 따라 다릅니다.
마리아나해구에서도 계절 변화가 확인되었나요?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한 장기 관측 결과는 주로 북동태평양 Station M과 북동대서양 심해평원에서 얻어진 것입니다. 이를 마리아나해구의 관측 결과로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마리아나해구의 계절성은 해당 지역의 직접 관측 자료를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심해의 계절 변화가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나요?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표층의 생산 활동과 해양 환경이 달라지면 심해로 전달되는 유기물의 양과 시기도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개별적인 계절 변동을 곧바로 기후 변화의 결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론: 심해의 계절은 먹이 공급의 변화로 드러난다
수천 미터 깊이의 심해는 햇빛이 없는 환경이지만 표층 해양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은 아닙니다. 표층에서 만들어진 유기물이 아래로 이동하면서 심해저의 먹이 공급과 생물 활동에 계절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Station M의 장기 관측과 북동대서양 심해평원 연구는 이러한 연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만 계절성의 강도와 시기는 지역마다 다르므로, 심해 전체를 하나의 환경으로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문헌 및 연구 자료
- Smith, K. L., Jr. et al. (2013). Deep ocean communities impacted by changing climate over 24 y in the abyssal northeast Pacific Ocea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0(49), 19838–19841. https://doi.org/10.1073/pnas.1315447110
- Smith, K. L., Jr. et al. (2014). Large salp bloom export from the upper ocean and benthic community response in the abyssal northeast Pacific: Day to week resolution. Limnology and Oceanography, 59(3), 745–757. https://doi.org/10.4319/lo.2014.59.3.0745
- Episodic organic carbon fluxes from surface ocean to abyssal depths during long-term monitoring in NE Pacific (2018). 논문 원문
- Jeffreys, R. M. et al. (2013). Feeding Preferences of Abyssal Macrofauna Inferred from In Situ Pulse Chase Experiments. PLOS ONE.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08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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